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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또깡 작성일20-11-13 14:33 조회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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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ive-in movie theatre returns to Santiago

epaselect epa08816982 People watch a movie at a drive-in theater in Las Condes commune in Santiago, Chile, 12 November 2020. The Chilean health authorities authorized the operation for all audiences of a drive-in movie in the Parque Padre Hurtado of the commune of Las Condes, located in the upper sector of the capital. EPA/Alberto Val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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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12 미니·프로맥스, 이달 13일 사전예약 시작…20일 정식 출시

13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 11번가 등 오픈마켓이 이날 0시 진행한 사전예약에서 아이폰12 미니와 아이폰12 프로맥스는 빠른 시간에 완판됐다. [사진=애플]


[아이뉴스24 서민지 기자] 아이폰12 시리즈가 잇단 '완판'으로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파워볼

13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 11번가 등 오픈마켓이 이날 0시 진행한 사전예약에서 아이폰12 미니와 아이폰12 프로맥스는 빠른 시간에 완판됐다. 아이폰12 미니와 아이폰12 프로맥스는 이날부터 예약 판매를 시작, 20일 정식 출시된다.

쿠팡은 트래픽 폭증으로 30분 넘게 접속이 불가하다 오류가 해결된 뒤 약 10분 만에 품절됐다. 11번가 역시 10분이 안돼 물량이 동났다.

이동통신 3사의 공식 온라인몰 역시 많은 소비자들이 몰렸지만, 상대적으로 원활한 접속이 가능했다. 이는 이동통신사에서 공시지원금을 받는 것보다 선택약정할인(25%)을 받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카드 할인 등 다양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자급제폰으로 개통하면 5G 요금제를 필수로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수요가 몰린 배경으로 꼽힌다. 현재 5G 자급제폰에 한해 LTE 요금제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아이폰12 시리즈는 완판 행진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23일 진행된 아이폰12와 아이폰12 프로 사전예약에서도 판매 시작과 함께 물량이 동난 바 있다.

아이폰12 판매가 먼저 시작된 일부 해외 시장에서는 예약 판매 첫날 170만~200만 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전작 아이폰11(80만 대)보다 2~3배가량 높은 수치다.

가격은 저장용량에 따라 아이폰12 미니는 94만6천 원부터, 아이폰12 프로맥스는 147만4천 원부터 시작된다.

서민지기자 jisse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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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3부 소년의 꿈 (14)

[박도 기자]


▲ 계동 어귀의 계산약국 자리, 현재는 3층에 계산 한의원 대신에 삼선당 한의원이 들어서 있다.
ⓒ 박도


아버지는 한 달여 만에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때 아버지는 날개를 다친 새처럼 바깥출입도 뜸한 채 방안에서 내가 배달하고 남겨온 신문을 광고까지 죄다 읽으며 지냈다. 내가 학업도 중단한 걸 보시고 크게 충격을 받은신 듯, 당신의 삶의 근거지였던 부산으로 가셨다. 거기서 파지로 과수용 봉투, 화물용 꼬리표, 등을 만드는 일을 하시면서 어머니와 막내동생도 불렀다.

그러자 서울에는 나만 남았다. 나는 거처를 계동 중앙학교 옆으로 옮긴 뒤 자취를 하면서 지냈다.

나는 계동 구역에 조선일보를 배달하면서 동아일보 배달원 김대식과 매일 만났다. 배달 구역도 코스도 거의 같았다. 신문이 나오는 시간도 비슷하기에 늘 우리 두 사람은 앞서거나 뒤서거니 서로 다퉜다. 서로 경쟁 관계였지만 둘 사이는 무척 친했다.

나는 대식을 통해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가 여러 면에서 대우가 더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선 배달 부수가 더 많기에 수입이 많았고, 배달원에 대한 사람 대접도 훨씬 좋은 걸 알았다. 하지만 재학생만 배달원이 될 수 있다고 하여, 마냥 부러워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배달 구역 첫 집은 계동 어귀 계산약국이었다. 그곳에서 시작하여 휘문, 대동, 중앙학교로 거슬러 올라가서 원서동 고개를 넘어 다시 아래로 내려온 뒤 창덕궁 사무실에 넣으면 끝이었다. 조간 배달이 끝나면 곧장 창덕궁 숲으로 들어가서 맑은 개울물에 세수도 하고, 가을철이면 산책길에 알밤도 주웠다.

그럴 때 나는 왕족이 된 기분이었다. 서울시민 가운데 몇 사람이나 이른 새벽 창덕궁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궁내 맑은 개울에서 세수를 하겠는가. 문득 사람의 행과 불행도 생각하기 나름 같았다.

설날 해맞이


▲ 백두산 정상에서 해맞이(2005. 7. 촬영).
ⓒ 박도


1962년 1월 1일, 그날 조간 신문은 신년호로 평소보다 세 곱 정도 분량이 많았다. 그래서 평소처럼 옆구리에는 도저히 낄 수가 없어 새끼로 신문뭉치를 묶어 등에 진 뒤 배달구역으로 갔다. 계동 어귀 휘문학교(현, 현대사옥) 담 으슥한 곳에다 신문뭉치를 감춰두고 평소와 같은 양의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독자 집에 배달했다.

그때 나의 마지막 배달 장소는 창덕궁 사무실이었다. 겨울이라 배달을 마쳐도 아침 해는 뜨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새해 해맞이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얼마 전에 올라가 본 북악산 기슭 삼청동 산비탈로 올라갔다.

나는 떠오르는 해를 향해 두 손을 모으면서 소원을 빌었다. 그 첫째는 복학을 하여 고교를 졸업한 뒤 교사, 그 둘째는 작가, 그 셋째는 신문기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당시 서울 북촌은 대부분 한옥이었다. 한옥 대문 틈으로 신문을 넣으면 집안에서 개들이 갑자기 뛰어나와 내 바짓가랑이를 물어 찢어놓곤 했다. 그때 나는 워커(군화) 발로 달겨드는 개 주둥이를 차면서 고함쳤다.

"사람 차별하지 마. 난 다음에 학교 선생님이 되고, 작가도 되고, 그리고 신문기자가 될 거야!"


▲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가 있던 자리로, 현재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빌딩이 서 있다.
ⓒ 박도


어느 새벽 배달 길에 동아 대식이는 나에게 언제 복학하느냐고 물었다. 다가오는 1962년 3월에 복학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마침 배달원 자리가났다고 하면서 석간 배달 후에 자기와 같이 보급소에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꼭 교복을 입고 오라고 했다. 그 말에 내가 쭈뼛 망설이자, 그럼 교모라도 꼭 쓰고 오라고 일렀다.

그날 석간 배달 후 나는 대식이를 따라 청진동에 있는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로 갔다. 집에서 교모를 가슴속에 품고 갔다가 보급소 문 앞에서 썼다. 보급소 소장은 새 학기에 꼭 복학을 한다는 조건으로 뽑아주었다. 가난한 서촌 예술인 마을

나는 그토록 소망하던 동아일보 배달원이 되어서 마치 큰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무척 기뻤다. 그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조선일보 계동구역을 사흘 만에 인계하고 동아일보 누하동 구역으로 옮겼다.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는 청진동에다 한옥 한 채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그 한옥은 보급소 사무소 겸 배달원들의 무료 숙소로 제공했다.파워볼엔트리

월말 수금 때는 보급소에서는 특식으로 날마다 지금의 교보문고 자리에 있었던 '복취루'라는 중국집에서 계란빵을 사다가 한 개씩 나눠줬다. 그 빵 맛이 기가 막혔다. 신문 사납금을 다음 달 8일까지 마감하면 2퍼센트의 특별수당을 더 주는 등, 다른 보급소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 대우였다.

나의 배달구역은 서촌 누하동으로, 그 동네에는 가난한 예술인들이 많이 살았다. 기억에 남는 분으로는 동양화 청전 이상범 화백 댁과 도상봉 화백, 그리고 서양화 천경자 화백이었다. 세 집 모두 동아일보 독자였다. 이상범 화백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에 근무한 분이었기에 본사에서 무가지라 하여 그냥 넣어드렸다.

천경자 화백 댁은 이상범 댁 골목 어귀 두 번째 집으로 초라한 한옥이었다. 나무문패에 본인의 먹으로 쓴 '千鏡子'라는 글씨체가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다.


▲ 서촌 누하동 이상범 화백 댁
ⓒ 박도


복학하다

개학식 날, 나는 묵은 교복을 꺼내 입고 윗목에 고이 모셔놓은 책가방을 들고 다시 학교에 갔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다시 들자 마치 꿈만 같았다. 개학식에 참석하고자 운동장으로 가다가 농구 코트에서 지난해 짝 철웅을 만났다. 먼저 그가 멀리서 알아보고 달려와 포옹을 하고는 나를 번쩍 들었다가 놓았다.

"복학, 축하한다. 박도!"
"반갑다!"

그날이 내 생애에 가장 기뻤던 날로, 그 순간 눈물이 불쑥 솟았다. 지금도 그날의 일들이 또렷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그리하여 나의 고교생활은 다시 시작됐다.

나는 고교 시절 무척 어렵게 학교에 다녔지만 중동학교 선생님들에게는 무척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국어과 박철규 선생님은 계동에 사셨기에 신문배달 중에도 이따금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에게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았고, 후일 나를 모교 교사로 채용할 만큼 내 앞길을 열어주셨다.

내 인생길에 가장 영향을 주신 분은 고교 시절 홍준수 선생님이시다. 그분에게 2년간 사회 과목을 배웠고, 또 교지 및 신문 편집기자로 곁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홍 선생님이 수업시간 중 틈틈이 들려준 말씀들은 사회에 막 눈을 뜨려는 고교생의 지적 호기심을 풀어주는 샘물이었다.

오로지 '반공'만이 국시였던 그 무서웠던 시절에도 선생님은 대단히 용감하게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배경이나 발달사와 그 장단점을 교육자의 양심에 따라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고2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전교생이 단체로 단성사에서 영화를 본 다음 날 사회시간이었다. 그 영화 제목은 <싸우는 젊은이들>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미국 영화였다.

마지막 장면은 미군 병사가 눈이 쌓인 고지에서 몰려오는 인민군들을 기관총으로 신나게 쏘아 죄다 쓰러뜨렸다. 우리들은 그 장면에 기립박수를 치면서 영화관을 나왔다. 그 이튿날 수업시간이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마지막 장면에 기립 박수를 쳤다. 그런데 총을 쏜 병사는 어느 나라 사람이고,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우리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일흔이 넘은 입때까지 시민기자 생활을 할 수 있는 까닭은 고교시절 학생기자로 홍 선생님에게 배운 기사 작성법과 편집술 때문일 것이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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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구슬 기자] 만취 상태로 전동 킥보드를 몰던 20대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인천 부평경찰서는 13일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25세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A씨는 전날 오전 5시26분께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한 도로에서 술을 마신 상태로 전동 킥보드를 운전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순찰하던 중 왕복 8차로 도로의 중앙선을 넘어 지그재그로 역주행하던 A씨를 발견하고 음주 운전 여부를 확인했다.

적발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치인 0.152%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타고 있던 전동 킥보드는 일정 요금을 내고 이용하는 공유형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법 개정 전이기 때문에 일반 차량 음주운전과 동일하게 단속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동 킥보드 이용이 늘면서 관련 사고는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관내 공유형 개인형 이동장치는 2018년 150여 대에서 2020년 3만5850여 대로 239배 급증했으며, 사고 건수도 2017년 29건, 2018년 50건, 2019년 134건으로 2년 사이 4.6배나 증가했다.

전동 킥보드 관련 사고가 급증하고 있지만, 오는 12월10일부터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관련 규제는 완화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전동 킥보드는 도로교통법상 오토바이와 유사한 ‘원동기장치 자전거’에 해당해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을 하면 차량과 동일한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음주 상태로 전동 킥보드를 운전할 경우 일반 자전거와 동일하게 범칙금 부과 수준으로 처벌 수위가 낮아진다.

또한 지금은 이륜자동차 면허가 있는 만 16세 이상만 운행할 수 있지만, 면허증 없이도 만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전동 킥보드를 탈 수 있다.

헬멧 착용도 의무가 아니다. 현재는 면허가 필요한 오토바이에 속하는 만큼 헬멧 등 안전장비 착용이 의무지만, 12월부터는 자전거로 분류돼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단속할 권한이 없다.

장구슬 (guseu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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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고영욱 / 사진=DB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미성년자 3명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룹 룰라 출신 가수 고영욱이 SNS 활동을 시작하며 '소통'을 선언했다. 예상대로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고영욱은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렇게 다시 인사를 드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많은 분들이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시기"라고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이어 "저는 9년 가까이 단절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살아있는 한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기에 이젠 조심스럽게 세상과 소통하며 살고자 한다"며 "아직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늘 성찰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다. 아무쪼록 건강하라"라고 덧붙였다.

또한 모친의 사진을 게재하며 "저희 엄마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저로 인해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지만 다행히도 반려견들과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엄마의 건강하신 최근 모습도 차차 올리도록 하겠다"고 적었다.

고영욱은 2010년 7월부터 2012년 12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미성년자 3명을 자신의 오피스텔과 승용차 등에서 5차례 성폭행 및 강제추행한 혐의로 2013년 구속됐다.

당시 고영욱은 징역 2년 6개월, 신상정보 공개 5년, 전자 발찌 부착 3년형을 받았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연예인은 고영욱이 처음으로, 그는 '전자발찌 1호 연예인'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재판을 받는 동안 남부구치소에서 11개월 동안 복역한 그는 안양교도소, 서울남부교도소 등에서 형량을 채운 후 2015년 7월 출소했다. 고영욱은 출소 당일 "연예인으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이제부터 제가 감내해야 할 것들을 감내하면서 성실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고영욱은 2018년 6월 전자발찌를 풀었고,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한 신상공개는 올해 7월 만료됐다. 그가 소통하겠다고 나선 것도 신상정보 공개, 고지 기간은 끝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듯 재판, 복역 기간을 포함해 9년 가까운 시간 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고영욱은 SNS로 "대중과 소통하겠다"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피해자들에 대한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참으로 뻔뻔한 소통 선언이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였던 만큼 대중의 분노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9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그의 잘못이 없어지지 않은 것은 물론 그 누구도 고영욱의 복귀를 기다리거나 바란 사람은 없다. 수요 없는 공급인 셈. 심지어 조심스레 소통하며 살겠다더니 SNS 댓글 기능은 차단된 상태다. 도대체 누구와 소통하겠다는 말인가.파워볼

그는 '세상과 단절' 됐다는 표현을 썼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세상과의 단절을 강요한 적은 없다. 미성년자 성폭행 등의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질러 스스로 세상과 단절된 것은 본인이다. 또한 SNS를 하지 않는다고 세상과 단절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말대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노력하며 조용히 살아가면 될 일이다.

전자발찌는 풀렸지만 고영욱에게 낙인 된 주홍글씨는 영원히 지우기 힘들다. 연예계 복귀는 아니라지만, SNS로 소통을 선언하며 이름이 노출되는 일 자체가 피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가해인 것은 분명하다.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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